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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법회 내용요약 및 좋은 글 모음

지난 정기 법회의 내용과 좋은 글들을 간단히 요약하여 모아 두었습니다. 원하시는 날짜를 클릭하시면 요약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매달 첫째와 셋째 일요일은 다 함께 백팔 참회를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일요일은 관음법회일로 부처님 말씀을 전해 드리고 네번째 일요일은 참선을 하며 다섯번째 일요일이 있는날은 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법회를 하고 있습니다.



을유년 우람분절 법문 (7.15.2005)

불탄절(음4월초파일), 성도절(음12월8일:납월파일), 열반절(음2월15일)과 함께 불교의 4대 명절입니다. 오늘 우람분절은 전생의 죄업으로 지옥고를 겪고 있는 조상과 모든 영가들을 천도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俗家 마을에서는
1. 百中(中元)---일년 중 가장 중간이 되는 날.
2. 百種--- 백 가지의 햇곡식으로 조상께 제사.
3. 白踵--- 발꿈치가 희어짐, 봄부터 농부들이 일이 바빠 흙 뭍은 손발로 저녁 늦게 돌아와 자고 또 일어나고 하다가 이 때쯤은 농사일이 끝나 깨끗이 씻어 발뒤꿈치가 희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佛家에서는
1. 白衆--- 대중에게 고백하는 날. 음4월 15일부터 음7월 15일까지 하안거로 공부 중에 일어났던 생각, 의심 등을 묻고 또 잘못한 것을 모든 대중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받는 날입 니다.
2. 自恣日--- 스스로 뉘우치고 참회하는 날.
3. 魄縱--- 업에 얽혀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영혼들이 부처님의 법력에 의해 해방된다는 뜻이니 곧 혼을 놓아준다는 날.
4.우란분절(盂蘭盆節)---‘우람분’이란 인도 말입니다.
‘울람바나(Ullamvana)의 음역’으로 ‘거꾸로 메어 달다’는 뜻입니다. 즉 우람분절은 ‘거꾸로 매어 달린 것을 풀어주고 바르게 세움’을 의미한다. 이 말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가를 해방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佛說盂蘭盆經>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귀지옥에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천상으로 천도한 목련존자의 효행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신통에 뛰어나서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라고 합니다. 수행에 의해 여섯 가지의 뛰어난 신통을 얻은 후 자신의 부모를 관하여 보니 그의 어머니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 그의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의 효심을 가상히 여겨 7월 15일 해재날 많은 대중에게 공양하고 우람분재를 지내라고 합니다. 그 공덕으로 지옥문이 열려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지옥고에서 해방되어 천상에 나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고려시대에는 이날을 맞이하여 성대한 우람분회를 열어 국경일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불교의 영가천도일인 우람분절이 농경사회의 노동풍습과 어울려져서 민족의 고유 미풍양속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의 각 사찰에서는 이날을 효행의 날과 노동자의 날로 위로는 부모와 조상을 위하고 한편으로는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을 위한 날로 특별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하는 효도에 대해서는 ‘아함경’에,
옷과 음식을 드림은 下品의 孝道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함은 中品의 孝道이며,
부모님의 공덕을 부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은 上品의 孝道라 한다고 했습니다.
下品(옷과 음식)과 中品(마음을 기쁘게 함)의 효도는 싶게 할 수가 있지만 부모님의 공덕을 부처님께 돌려 드리는 上品의 효도는 그리 싶지 않습니다.
上品의 효도로써
첫째, 부모님으로 하여금 부처님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록 살을 도려내어 국을 끓여드리고 자식을 버리면서 까지 부모님을 봉양한다해도 살아 생전의 효도에 그치지만 부처님을 잘 믿도록 하면 安心立命(번뇌에서 해탈)을 얻어서 생사윤회의 고통을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모님을 위하여 佛事를 베푸는 일. 이것은 살아 계실 때 뿐 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후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우람분재를 베풀어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머님을 구한 일, 김대성이 전생과 현생의 어머님을 위하여 석굴암과 불국사를 세운 일 等이 모두 佛事를 통한 上品의 효도입니다.

셋째, 스스로 진정한 불자가 되는 길입니다. 진정한 불자는 궁극적으로 성불하는 것이요, 성불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사람만이 참다운 불자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효자는 바로 부처님입니다. 왜냐하면 성불하셔서 부모님들을 모두 해탈토록 하셨으니 그 이상의 효도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의 참다운 효도는 각자가 진정한 불자가 되는 길입니다.
모두 합장하시고,
다같이 다음 진언을 따라 하십시오.

먼저 살아 계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진언입니다.
보부모은 진언(報父母恩 眞言)
나무 삼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3번)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진언입니다.
왕생정토 진언(往生淨土 眞言)
나무 삼만다 못다짐 옴 싯뎨율이 사바하(3번)

법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 진정한 불자가 되어서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을유년 칠성기도 회향 법문 (7.7.2005)

음력 7월 7일 칠석은 세시명절의 하나로 중국의 속절(俗節)이 고려에 전해진 것입니다. 칠석이 되면 항상 같이 연관되어지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 은하수, 옥황상제, 까치와 까마귀, 오작교 그리고 비가 내린다고 하지요.
이 전설은 중국 한(漢)나라에서 고려에 전해져 공민왕(恭愍王)은 왕후와 함께 대궐 내정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칠석(七夕)은 사랑을 확인하는 미국의 발렌타인스 데이(Valentine's day 양력 2월 14일)입니다.
요즈음은 서로 사랑하는 표시로 서양식 카드나 초코렛을 주지만 우리 선조들은 평소 마음에 간직했던 사랑의 선물로 영원히 변치 말 것을 기약하는 의미로 은행나무 씨앗을 주었답니다.
이렇게 서양과 동양문화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카드나 쵸코렛은 얼마가지 않지만 은행나무 씨앗은 썩지도 변하지도 않으니 얼마나 적절한 마음의 표현입니까.

칠석을 맞이하여 준비하는 음식은
밀전병---호박을 잘게 썰어 만든 부침개.
밀국수---밀가루로 국수, 칼국수, 메밀국수, 지금은 냉면.
과일화채---제철에 나오는 과일로 만드는데 여름철엔 복숭아나 수박으로 화채를 만들어 먹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 부족하기 쉬운 수분보충과 함께 과일의 비타민을 취하여 여름을 이깁니다.
시루떡---팥떡과 흰 쌀가루로 만든 백설기를 많이 쪄서 먹었답니다. 요즈음이야 음식이 많지만 옛날에는 여름에 입맛이 없을 때 먹는 주 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음식은 오늘날에도 많이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칠석날을 맞이하여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도 알뜰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칠석날 하루 24시간의 사랑이 여기 계신 분들이 평생 사랑하는 것보다 더 알뜰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하루 24시간을 나누어 보면 평균으로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나머지 8시간은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 식사준비해서 먹고 설거지하는데 3시간,
샤워하고, 옷 차려입고 화장하고, 커피 한잔하고, 하루종일 변소 들락거리는데 2시간,
출퇴근하는데 평균 1시간,
이것저것 준비하고 아이들 챙겨주고 하면 1시간,
그 외 전화하고 대충 집안 정리하고, 세탁하고, 근심 걱정도 조금하고 그리고 한번씩 부부싸움도 하게되니 1시간,
저녁식사 후에 바로 자면 소화가 안되니 비디오 하나 봅시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보면 최소한 1시간,
이렇게 계산하면 남는 시간이 전연 없습니다.
매일 쳐다보는 부부가 언제나 그렇게 알뜰히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생활하면서 여유를 내어 하루에 몇 분간만이라도 알뜰히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 1분 사랑하면 일년 365일 365분입니다. 견우직녀의 24시간 사랑은 1440분인데 하루에 2분 사랑하면 1년에 730분, 최소한 4분은 사랑을 해야 견우직녀의 하루 사랑에 해당됩니다.
하루 4분의 사랑을 하면 1년에 1460분이 됩니다. 그 이하로 하면 채 하루도 사랑을 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오늘부터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견우와 직녀 보다 더 많은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이민생활에 하루 4분 이상 진정으로 위해주고 부드러운 말이라도 한마디 서로 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신 오늘 너무 힘들었지.”
“오늘 내가 당신에게 미안했어.”
그리고 손을 한번 꼭 잡아준다거나. 매일 이렇게 4분 이상은 배려를 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쉽지는 않겠습니다. 4분간 손을 잡아 준다거나, 또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그리 쉽나요. 그래서 사랑도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둘째는 새 생명과 수명입니다.
그냥 오래 살기만 바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고통이 심한 병이나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인과법에 의하면 수명이 짧고 병치레를 많이 하는 사람은 전생에 살생을 많이 했거나 악한 말, 험한 말을 많이 하여 사람들을 괴롭힌 과보입니다.
다행이 여기 계신 분들은 부처님 법을 만났으므로 부처님 가르침대로 남을 위해서 많이 보시하고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짓기 위해서 남을 위한 보살사섭섭, 육바라밀을 꼭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일화를 소개해 드립니다.
옛날에 사위성 밖에 사는 한 부인은 불교에 귀의하여 계행(戒行)을 잘 지켰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이 그 집에 가서 걸식을 청하자 부인은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곧 바리때에 밥을 담아 드렸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를 심으면 열이 생기고, 열을 심으면 백이 생기며, 백을 심으면 천이 생기는 법이다. 이렇게 해서 만이 생기고 또 억이 생기는 것이며,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느니라."
그런데 아직 불교를 믿지 않는 그 집 남편이 뒤에서 잠자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사문 고타마님의 말씀은 어찌 그리 허풍이 심하십니까? 정말 한 바리때의 밥을 보시함으로써 그런 복을 얻고, 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부처님이 되물으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사위성 안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그 성안에 있는 니구율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 나무는 높이가 무려 40리에 달하며, 해마다 수만 섬의 열매가 열립니다."
"그 나무의 씨는 얼마나 큰가?"
"겨자만 합니다."
"그 겨자 만한 씨를 한 됫박쯤 심어서 그렇게 큰 나무가 자란 것인가?"
"아닙니다. 그저 씨 하나를 심었을 따름입니다."
"당신 말은 어찌 그리 허풍이 심한가? 겨자 만한 씨를 하나 심어 어떻게 높이가 40여 리가 되고, 해마다 수만 섬이나 되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사내는 말문이 막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이에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아무 생각이 없는 땅조차 그 갚음이 그러한데, 기쁜 마음으로 한 바리때의 밥을 여래나 수행자에게 보시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그 보시의 갚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이니라!"

부처님의 설법에 그 부부는 곧 마음이 열려 수다함과를 얻었습니다.
티끌이 작다 하여 무시하고 모아두지 않으면 태산은커녕 동산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칠석을 맞이하여 사랑과 보시를 꼭 실천하는 불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을유년 부처님 오신날 법문 (5.15.2005)

지금으로부터 2549년 전 4월 초파일 바로 오늘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불탄절 또는 욕불일(浴佛日)이라 합니다. 욕불일(浴佛日)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설화에 보면 아홉 마리의 용이 차고 더운물을 토해내어 목욕을 시켰다고 해서 연유된 말입니다.

부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늘 위나 하늘아래 오로지 나 홀로 우뚝한 존재를 말하는데 여기의 유아(唯我)는 대아(大我)로써 전체아(全體我) 또는 우주아(宇宙我)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진리만이 우뚝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 유일 무이한 각자의 나는 유아독존입니다. 우리 모두 개개인이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어 모든 인류는 물론 6도(천상,인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부처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오른손의 하늘은 理想 왼손의 땅은 現實
오른손의 하늘은 精神 왼손의 땅은 肉體
오른손의 하늘은 本體 왼손의 땅은 現像
오른손의 하늘은 平等 왼손의 땅은 差別
오른손의 하늘은 無限 왼손의 땅은 有限
오른손의 하늘은 絶對 왼손의 땅은 相對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理想과 現實에 있어서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에서 좌절감만 더하고 또 현실에 치중하다 보면 발전이 없으며
精神과 肉體가 동 떨어져 있으면 인간으로써의 구실을 못하며
本體와 現像을 구별하다 보면 실체를 잃어버리고
平等과 差別은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하고
無限과 有限은 유한을 넘으면 무한이요 무한에서 그치면 유한인 것이니 따로 존재할 수가 없고
絶對와 相對는 관념으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양변을 포함한 중도(中道)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도란 중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양극을 포함하여 이를 초월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바로 평등사상을 내 보이신 것입니다. 흔히 불이(不二)라고 하여 그냥 하나(唯一)가 아니라 둘이 아니다 라고 하여 간접적인 하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唯一)가 되기 위해서는 인내와 성실로써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정진(精進)입니다. 입으로 그냥 하나(唯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몸으로 실천하는 하나(唯一)가 곧 불이(不二)입니다.

또 평등을 표현하는 말로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중생들이 다 같이 부처의 성품이 있다하여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살생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 삼계가 오직 한 마음이고
만법개유식(萬法皆唯識) 만법이 다 생각이니
우치미중생(愚癡迷衆生) 어리석어 어두우면 중생이고
대각명위불(大覺名爲佛) 크게 깨달으면 바로 부처이다

오늘은 모두 절에 가서 등을 달고 불공을 드리는데 진정한 부처님 오신날은 고통 속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위한 등불, 복을 받고 지혜를 심는 성스러운 등불, 그리고 무명생사의 어두움에 크다란 깨달음의 밝은 등불을 밝히는 지혜의 등과 자비의 등을 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위의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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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정초기도 입재일 법문 (2.13.2005)

올해는 乙酉年 닭띠의 해입니다.
12간지로는 열 번째가 되며 시간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입니다. 달로는 음력 8월이며 방향은 서쪽입니다. 서로 합으로 잘 지내는 띠는 뱀띠와 소띠이며 반대로 서로 대립되는 띠는 토끼띠가 되겠습니다. 원진살은 호랑이띠로서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주역이나 그 외 역술에서 나온 것들인데 여기에 집착하여 살아가는데 제한을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기의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업자득, 자작자수, 선인선과, 악인악과라는 인과를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의 운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지 점이나 믿고 거기에 집착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닭에 대해서는 좋은 칭송이 많이 있습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려 어둠이 끝나고 밝은 빛 태양이 오는 것을 예고해 주는 길조로 생각합니다.
또 닭은 다섯 가지의 덕을 지녔다고 합니다.
닭의 벼슬은 文, 발톱은 武, 적에 대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勇, 먹이를 보면 꼭꼭 꼭꼭하는 소리를 내어 무리를 부르는 仁, 때를 맞추어 울어 새벽을 알리는 信으로 文武勇仁信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닭띠는 문무를 겸비하고 용감하며 또 어질면서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불교 집안에서는 12지 신상 중에 닭 머리에 사람 몸을 가진 진달라라는 신은 고대 인도의 귀신인 야차가 불교 속으로 들어와서 불교와 보살을 수호하고 나약한 인간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장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옛 왕들의 무덤에서 12지 신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산대사가 지리산 암자에서 화두에 묻혀 정진하면서 하루는 도반을 찾아 마을로 내려가다가 낮에 닭이 크게 우는소리를 듣고 확철대오하여 오도송을 남겨 오늘에 전하고 있습니다.

오도송은
머리칼은 희어도 마음은 희지 않다고,
옛 사람들은 누누이 설한바 있지만.
이제 와서 외마디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노라.


닭 울음소리만 깨달음의 기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순간 하는 행동,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기적이요 깨달음의 인연이지만 단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뿐입니다.
병상에 오래도록 누워 계신 분들은 길에 걸어 다니는 것도 기적이요 마음대로 음식을 먹는 것도 기적으로 보인답니다. 매순간 일어나는 기적을 우리는 그냥 모르고 지나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살아 움직이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기적이며 신통임을 알아야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멈출 때가 생깁니다. 그때 가서 생각하실 것을 지금 미리 생각하면서 살아가신다면 2005년 乙酉年은 훨씬 행복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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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부처님 오신날 법문 (5.23.2004)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2548년 전에 이 사바세계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바세계에 오셔서 80세를 살다가 가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분입니다. 이것은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다른 종교는 神本主義의 종교인데 反하여 불교는 人本主義 종교입니다. 神本主義 종교는 神을 위해 人間은 봉사하고 복종하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神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지만 人本主義인 불교는 사람에게 봉사하고 협동하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는 관점에서 크다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애는 八相成道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바 세계에 오셔서 성도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열반에 드실 때까지 8가지의 모습입니다.

1.兜率來儀相
도솔천 내원궁에서 사바세계에 오신 인연입니다.

2.毘藍降生相
가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부인에게 잉태하여 태어난 모습.

3.四門遊觀相
성밖의 외출입니다. 동문, 남문, 서문에서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게 됩니다. 어려서 일찌기 어머니를 여이고 깊은 시름에 있던 왕자는 무상한 생각이 점점 깊어 갑니다. 그러다 북문의 외출에서 편안해 보이는 수행자를 보고는 자기의 갈 길을 정하는 모습입니다.

4.喩城出家相
아버지 정반왕의 출가 허락을 받지 못하자 밤을 이용하여 몰래 성을 빠져 나오는 모습입니다.

5.雪山修道相
깨달음을 위해 고행의 길에 들어서서 수행하는 모습입니다.

6.樹下降魔相
자기와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를 물리치고 얽매이지 않고 해탈한 대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7.鹿苑轉法相
성도 후에 처음으로 녹야원이란 곳에 이르러 교진여 등 다섯 사람에게 법을 설합니다. 이때 설하신 법문이 四聖諦이니 苦(현실세계의 진단) 集(그 진단의 원인 분석) 滅(현실에 대한 대안제시) 道(그 대안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후세사람들은 初轉法輪이라고 합니다.

8.雙林涅槃相
태어나서 29살에 출가하여 6년 고행 후 35살에 성도하여 45년간 중생을 제도하시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 지방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룸비니 동산의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중생들을 제도하시다가 결국 길에서 열반에 드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道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일생을 우리 중생들의 곁에 머무셨던 분입니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는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행입니까 육도(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중에 인간으로 태어났고 더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이 복을 스스로 알아서 만족하면서 모든 분께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 소개합니다.
어느 날 디그하자누 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와서 묻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처자식을 거느리고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신도입니다. 현세를 살아가면서 행복해지는데 도움이 될 가르침을 설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현세에서 행복하게 사는 4가지 길을 일러주십니다.

“첫째, 자기의 직업에 숙달되어야 하고, 능률적이어야 하고, 정력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일에 통달해서 즐거워해야 한다.
둘째, 땀 흘려서 정당하게 번 수입을 잘 지켜야 한다.
셋째, 신의가 있고, 지적이며 총명하고, 덕이 있고 관대하며, 악을 멀리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좋은 친구가 있어 야 한다.
넷째, 자기의 수입에 비해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재물을 탐욕스럽게 인색하게 아껴도 안되 지만 낭비를 해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행복의 4가지 조건)

이와 같이 말씀하신 부처님은 神도 아니고 묘한 신통을 부리는 초 능력자도 아닙니다. 다만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어간 수많은 인류 가운데 가장 크게 깨달으시고 가장 자비로우시며 가장 지혜로우신 스승이며 가장 성스럽게 살다 가신 분이기에 부처님 전에 예배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인 라마 찬드라 브하라티는 말합니다.

"제가 붓다에 귀의하는 것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붓다가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태양의 아들이기 때문에 귀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한량없는 자비의 힘에 이끌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비길 데 없는 지혜의 힘에 이끌려 거대한 윤회의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 입니다."

기도에 동참하신 모둔 분 다같이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우리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실천하며 자비의 힘에 이끌려 모든 것을 포용하여 생사의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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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법회에 다녀와서 (4.25.2004)

달라이라마는 정치적인 질문을 받았지만 자기는 단순히 한사람의 승려 일뿐이라고 하면서 19일간의 카나다 방문에 몇 도시를 거쳐 4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10일간의 일정으로 “Toronto Kalachakra 2004" 의 행사를 위해 토론토를 방문했다.
그 첫 행사로 토론토 시내에 위치한 카나다 최대의 실내경기장인 Skydome에서 Public Talk 가 있었다. 미국 미시간의 무문사에서는 카나다의 국경을 넘어 자동차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25일이 일요일이라 20여명의 신도 님들이 일부는 토요일에 출발하고 일부는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토론토에서 만나 다같이 입장을 하였다. 그날 따라 날씨는 최악이었다. 온타리오 호수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비까지 동반하여 초겨울 같은 싸늘한 날씨였다. 그기에다 안전검사까지 마치고 들어가야 했으니 입장이 예정 보다 무려 한시간이나 지연되었다.
일정은 오후 3시 30분이었는데 안전검사를 고려하여 입장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다.
참가비는 좌석에 따라 10불, 20불, 30불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30불 좌석은 벌써 매진되고 20불 짜리 좌석을 3주전에 구입했는데 도착되어서는 10불 좌석까지 매진되었다. 사회자의 말로는 참석자가 25,000이라고 했다.
(이튿날 토론토 최대 일간지인 Toronto Star지에 29,039 라고 참석자를 정확히 보도했다.)
5시 가까워서 모든 청중들의 우뢰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달라이라마가 입장하였다. 그는 머리위로 두 손을 합장하여 인사를 하고는 오른 손을 이마에 대고 미소를 지으며 마치 시골 할아버지가 이마에 손을 얹고 먼 산을 자세히 살피듯 관중석을 주욱 들러 보면서 “Good evening everybody." 하고는 통역자를 대동하여 의자에 앉았다.
사회자의 안내로 트뢰도 전수상의 아들 저스틴이 그를 소개하면서 환영사를 했다. 그 많은 참석자들이 자리를 꽉 메웠음에도 불구하고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법문 주제는 ”The power of compassion"이었다. 통역관의 통역보다는 거의 본인이 직접영어로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통역관에게 단어를 물어 보는 듯 보였지만 그의 표현은 처음부터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존경해야 한다고 하며 자비심을 역설했다. 비록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다 같은 형제자매들이라고 했다. 그는 또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세기는 대립의 세계였지만 21세기는 대화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표정은 밝고 안온했으며 여유가 있었다. 간혹 미소를 띄우며 가벼운 농담도 있었다. 마지막에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중 하나를 원문으로 소개하면
"How can we help you go home?"
그는 대답했다
Buy a one-way ticket (from)here(Toronto) to Pecking, Pecking to Lhasa(중국 티벧 자치구의 수도).
The reality, more complicated.”

질문과 대답이 간단하면서도 포함하고 있는 의미는 한용운의 조국을 위한 시만큼이나 애절했다. 한 시간동안 있었던 그의 법회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전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어디에 있던 그의 대답처럼 하루 빨리 편도 비행기표로 그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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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정초기도 입제일 법문 요약 (1.25.2004)

올해는 2004년 갑신년 원숭이의 해가 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1884년 12월에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입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고종 21) 김옥균(金玉均)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입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 버리고 맙니다. 당시 명성왕후가 청나라에 원군을 청하여 국내에 머물고 있던 청군 1500여명으로 개화파를 공격하여 주모자들을 살해하고 김옥균 외 몇 명은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가 그곳에서도 있지 못하고 중국 상해로 갔다가 어느 여관에서 한국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는데 그때의 김옥균의 나이는 43살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굉장한 혼란의 해였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갑신년 올해에도 우리 모든 불자님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내야 하겠습니다.
또 갑신년의 원숭이는 12지 중에 아홉 번째 동물로 지혜롭고 민첩하며 여럿이 어울려 살면서 교만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영특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원숭이띠의 사람들은 재주가 많고 총명할 뿐만 아니라 인내심도 강하여 모든 일을 원만하게 잘 처리한다고 합니다.
사주학 상으로는 천고를 타고나서 아무리 명예와 부를 가져도 타고난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달로는 7월 달이며 時는 오후 3시-4시 사이입니다 서로 잘 맞는 띠로는 쥐와 용띠라 올해는 쥐띠와 용띠는 합이라 일이 잘 된다고 풀이가 되겠습니다. 그 반대로는 원숭이띠는 호랑이띠와, 쥐띠는 말띠와, 용띠는 개띠와는 서로 대립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 말, 개띠가 올해부터 삼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내와 총명을 갖춘 원숭이 해에 우리도 총명한 지혜로 부처님의 법을 잘 배워서 꼭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매달 한국에 계신 분이 무문사 신도 님들을 위해서 법공양 월간지를 보내 오는데 2004년 1월호에 복 짓는 관세음 보살이라는 제목으로 우룡스님의 법문이 실려 있습니다. 그냥 읽고 넘어 갈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내용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하거나 축원을 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꼭 재시(財施)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딸을 축원한다면 딸을 위해서, 남편을 기도한다면 남편을 위해서, 자기의 업장소멸을 기도한다면 자기를 위해서 각자의 몫으로 불전을 내어 복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전은 우리가 복전(福田)이라고 합니다. 복의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이라 씨를 뿌리지 않고는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형편에 맞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만큼 베푸는 마음도 그 만큼 지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베푸는 것은 곧 복을 짓는 것인데 이 복력으로 기도가 성취되며 바로 복력이 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많은 생을 통해서 베풀어 오신 그 복으로 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박복한 사람이라도 부처님을 모시고 가까이 하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의 가피력이 바로 복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삼재라고 해서 걱정들을 많이 하시는데 삼재도 복이 많이 쌓여 있는 분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재앙보다 복이 더 많은데 걱정하실 일이 전연 없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또 모든 분이 건강하게 지내셔야 하겠습니다. 그 비결은 두량 족난 복팔분(頭凉 足煖 腹八分)을 실천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말은 우리 나라의 선방에서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생활규범으로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배는 팔분만(80%) 채우라는 말입니다.
네델란드의 과학자며 유명한 의사 헤르만 보어허브는 1783년에 죽으면서 건강 비서를 남기는데 후에 이 책이 경매에 붙여져 2만 불에 낙찰이 되었답니다. 그 책을 구입한 사람은 당대 유명한 의사의 건강비서라 조심스레 포장을 풀고 펴 보았는데 첫 페이지에 “당신의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일생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열 받는 일이 많습니까. 직장에서, 가게에서, 하기 싫은 일 하면서, 보기 싫은 사람 보면서, 듣기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열을 많이 받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정에서까지 어느 것 하나 시원하고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요. 더구나 이민생활은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은 이렇게 열 받다가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열을 받으면 이 열은 머리로 올라갑니다. 젊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표현으로 뚜껑 열린다고 하더군요. 아마 물이 펄펄 끓어서 냄비 뚜껑이 열리는 것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두통, 고혈압, 그리고 신경성으로 뇌의 손상을 입어 치매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 머리가 뜨거우면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게되고 쓸데없는 일에 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 잘 받는 사람 치고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는 항상 차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열이 발에 있다고 합니다. 족난(足煖)입니다. 발이 따뜻하여 한겨울에도 벗고 뛰어 다녀도 아무 일이 없는데 요즈음 아이들은 너무 약하게 키워서 옛날 보다 더 감기에 잘 걸리고 병치레를 많이 하나 봅니다. 연세가 들수록 열이 위로 올라간다고 하지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발이 차고 무릎이 시리는 것입니다. 아랫도리에 찬바람이 싱싱 나면 아 나도 늙었구나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복팔분(腹八分)은 절대 음식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장을 꽉 채워 놓으면 졸음이 올 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적어 소화도 잘 안되며 식권증으로 무기력하게 되지요.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 됩니다. 그래서 음식은 항상 80%만 채워서 조금 부족한 듯 해야 그게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갑신년 정초기도로써 모든 분들이 복 많이 짓고 복을 이웃과 나누어 하며 두량 족난 복팔분(頭凉 足煖 腹八分)을 실천하여 건강한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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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부처님 오신날 법문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은 오는 목요일입니다만 주말 단위의 미국생활이기에 편의상 일요일로 앞당겨서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7일간의 기도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불자님들이 가져야 할 기본 마음가짐은 바로 下心입니다.
下心은 보살행, 자비행, 이타행의 실천에 가장 기본적인 마음 자세가 되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5월 한 달은 下心을 하는 달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5월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이며 감사의 달이기도 합니다. 서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하심으로 지내신다면 일년 내내 고마워하는 어머니날이며 아버지날이며 또 어린이날이 될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547년 전 4월 초파일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정반왕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며 장소는 룸비니라 동산이었습니다. 마야부인은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해산하기 위하여 친정인 코오리성으로 가시는 도중에 잠시 룸비니 동산에서 휴식을 취하시다가 갑자기 산기를 느껴 무우수 아래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4성 계급에 의한 출생인데 바라문은 머리로, 왕족은 옆구리로 평민은 태로 하층계급은 발바닥으로 태어난다는 인도 고유의 풍습에 의해서 부처님은 왕족이시니 옆구리로 태어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땅에 오셨을때의 탄생게(誕生揭)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일체개고 오당안지(一切皆苦 吾當安之)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로지 나 홀로 우뚝하게 존재한다. 일체중생이 무명으로 인해서 받고 있는 모든 고통을 내가 마땅이 제도하여 편안하게 하리라.

불성이라고 하는 부처의 성품은 일체 중생들에게 똑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부처님처럼 각기 모두 다 홀로 존귀하고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만이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위대한 탄생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 자기와 똑같은 존재가 있습니까. 유일한 자기 존재가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임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생명을 가진자는 인연법에 의해서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출생에 의해서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 천하게도 되고 귀하게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종은 종으로써 항상 주인의 눈치나 보면서 살게 되고 주인은 항상 주인답게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되느냐 종이 되느냐는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달린 것입니다. 요즈음 같은 21세기에도 종들이 많습니다. 권력의 종, 명예의 종들. 눈치나 보고 아첨을 떨면서 살아가는 종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서 사회의 부조리가 생기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일찌기 2500여년 전에 벌써 이러한 것을 아시고 모든 중생들이 다 평등하게 불성을 갗추고 있으므로 자기자신을 잘 다스리는 주인으로써 항상 당당하게 살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본은 평등하므로 풀벌레 한 마리라도 그 생명을 존중하는 평등심과 자비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탄생게의 첫 구절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모든 생명체는 근본에 있어서 절대 평등함을 깨우치신 평등 선언입니다.

두번째 귀절 일체개고 오당안지(一切皆苦 吾當安之)는 중생들이 모두 괴로워하므로 내가 마땅이 편안하게 하리라 하신 이 말씀은 부처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즉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이유를 여러경전에 기록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묘법연화경>의 기록을 보면
지견(知見)의 개시오입(開示悟入)으로
"여래께서는 중생들에게 부처의 지견(知見)을 공개(開)해서 부처의 지견을 보여주고(示), 부처의 지견을 깨닫게(悟) 하여 부처의 지견으로 도에 들게(入) 함으로써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려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부처님 오신날에 우리는 지혜의 등불을 밝혀 부처님의 일대사 인연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절에서 향을 피우고 촛불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자기 스스로를 태워서 향기를 피우고 또 밝은 빛을 내는 것입니다. 오늘 등을 켜시는 분은 다 함께 스스로를 희생 또는 헌신하여 가정은 물론이고 이웃에, 나아가 어려운 타국생활을 하는 모든 분들께 환한 빛을 비추는 등불이 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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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2일 법문

<행복합시다>

2003년에는 좀더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행복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선인들이 그 방법을 말해 왔습니다. 특히 근래에는 전 세계인에게 잘 알려진 달라이 라마도 행복론 이란 책을 내어놓았고 또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釋一行 76) 스님도 행복은 생활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바라기만 하지 정말로 행복해지려고 노력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그날은 아주 추운 날이었습니다. 나는 나만이 가는 이발소가 있습니다. 그 이발소는 Bally Fitness 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말하지만 혼자서 여기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아주 자연스럽게 잘 깎습니다. 모두들 운동하고 사우나 하러 가지만 나는 머리 깎으러 가니 이발소인 셈입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가는데 조금 떨어져 앞에 가는 사람이 다리를 몹시 절면서 Fitness Center의 입구로 가더군요. 나는 바람도 몹씨 불고 추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가다가 앞에 가는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내가 빨리 가서 무거운 입구 문이라도 열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그 사람이 먼저 가서 그 문은 열고 잡고 있기에 뒤에서 내가 잡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더니 안들어 가고 그 추운 날씨에 한참 서 있는 겁니다. 그 참 추운데 빨리 들어가지 않고(속으로)....... 그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앞쪽에서 여자 한사람이 추워서 웅크리고 오는걸 보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들어간 후에 저를 뒤돌아보고는 I am very sorry, after you.(미안 합니다. 당신 먼저), 물론 양보했지요. 안에 들어가서는 비록 다리는 불편하지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씽긋 웃으면서 Thank you 하더군요. 아주 사소한 것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서-언 합니다.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요.

나는 미국에 와서 배운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몸에 베인 것은 문을 열고 들어 갈 때나 나올 때 항상 뒤를 돌아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뒤만 돌아 볼 것이 아니라 앞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고 배운 것입니다. 그것도 미국 생활 20년만에. 앞으로는 꼭 앞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도 자기 몸의 불편을 감내 하면서 보여준 그 사람을 통해서....... 그래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스승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지난 12월에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나는 대통령 선거보다는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 공약에 관심이 많아서 유심히 보았는데 다른 것들도 다 좋은 말이었지만 어느 대통령후보의 10대 공약 가운데 <노인들을 잘 모시는 사회>라는 대목에 눈길이 멈추었답니다. 동방예의지국에 어찌 이런 공약이 있어야 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잘 모셔 왔는데 더 잘 모시자고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신선해 보이지 까지 했습니다. 앞으로 기대를 많이 해 봅니다.

지난주에 전화가 왔는데 버지니아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예 하고 답하고 누군가하고 망설이는데 저쪽에서 저 고 상길입니다 하더군요. 그래서 아 예 반갑습니다 잘 계시지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했더니 그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스님 우리 어머니를 너무 잘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번 무문사의 단체여행(카나다의 록키산) 때에는 식구들도 걱정하며 말렸는데 무문사의 신도님들이 모두 잘 모시고 다녀오셔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무척 고마워하더군요. 그리고 신도님 모든 분들께 일일이 인사드려야 하는데 대신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 달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분도 환갑을 넘기셨지만 어머님께서 연세가 92세 이시니 아들의 도리를 다 못한 점에 대해 몹씨 미안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우리 절의 최고 어른이시니 모든 신도님 들이 잘 모시는 거야 당연하지요. 지금도 기회가 되어서 본인이 원하시면 모시고 갈 것입니다. 오래 오래 건강 하십시요. 자연화 보살님.

이렇듯 행복은 자기 마음가짐에 있는 것입니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속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하십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절인 무문사가 있어서 행복한 것입니다. 미시간 주 뿐만아니라 오하이오주와 인디아나 주에 한국절이 하나 뿐이니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전화가 옵니다. 자기의 집 근처에 절이 없어서 너무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오하이오의 콜럼버스에서 전화가 왔는데 따님 집에 온지 4개월이 지나는데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이나 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국으로 곧 나가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전화를 받을 때는 마음이 참으로 아프답니다. 그런 분에 비하면 여기 계신 분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행복은 자기가 현재 서 있는 곳에서 찿아야 합니다.

새해 2003년에는 더 많은 행복을 생활속에서 찿으며 즐겁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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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10일 법문

법회 때는 항상 궁금한 게 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절에 무엇 하러 오실까?

복 받으러 옵니까?
업장이 너무 두꺼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금생에 업장소멸을 하러 오시는 건가요?
집안의 근심걱정을 멀리하고 편안한 가정을 부처님께 기원하러 오십니까?
사업 잘되게?
아니면 집안 어른이나 가족들이 건강하도록 기도하러 오시나요?
어떤 분은 스님에게 좋은 말씀 들으러 큰스님 작은스님을 찿아 다니는데, 그런 귀동냥 많이 해서 무엇하시려고, 불교를 머리로 많이 아는 사람치고는 신심 있는 사람 드물지요. 오히려 조금 아는 것 가지고 말만 많을 뿐 아니라 자만심만 가득합니다. 그리고 좋은 말은 집에서 책을 보시면 좋은 글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절에 오실 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쁜 이민생활에 시간이 남아서 맹목적으로 절에 오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절에 오셔서 하시는 말, 행동을 보면 절에 무엇 하러 오시는지 참으로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절에 오시는 목적이 지극하지 않아서 입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오신다면 쓸데없는 말하고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을 것이며 더구나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남의 말을 할 여유가 어디 있을까요.

절에 오시는 것은 평소 자기의 습(버릇)을 주위의 도반을 통해서 좋게 만들어 나가는 것에 목적을 두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도반으로 부터는 좋은 것을 배우고 자기와 맞지 않는 도반에게는 자기가 맞추어 나가면서 서로 화합하여 성불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서로 어우러져서 예쁘게 다듬어져 가는 것입니다. 설령 모난 돌이 들어와도 그 곳에서 같이 부대끼며 다듬어 지듯이. 우리도 부처님 법의 바다에서 같이 부대끼면서 모난 성격이나 나쁜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흐르면서 다같이 예쁘고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업장을 소멸하고 복과 덕울 갖추어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로 인해서 편안하게 하여 지도록 하는 원을 세워 실천하는 습(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또 절에 오시는 목적은 개공 성불도, 자타 일시 성불도.
우리 다같이, 주위 모든 분들과 내가 일시에 똑 같이 아름답고 예쁘게 다듬어져 부처가 됩시다 하는 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어느 구석에 남을 탓하거나 시비가 어디에 붙을 자리가 있나요. 불평하거나 험담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부처님께 절하면서 참회 하십시요. 자기를 가꾸는 바른 길입니다.
일찌기 우리에게 주어진 8가지 바른길, 팔정도를 가슴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바른이해(正見), 2. 바른사유(正思惟), 3. 바른언어(正語), 4. 바른행위(正業), 5. 바른생계(正命), 6. 바른노력(正精進), 7. 바른마음챙김(正念), 8. 바른마음집중(正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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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이야기

연꽃은 10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열가지 특징을 닮게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1.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란다.
그러나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이제염오(離諸染汚)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2.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뿐이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악과 거리가 먼 사람, 악이 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를 연꽃의 불여악구(不與惡俱)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3.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을 품어서 사회를 정화한다.
인격의 훈훈한 향기는 흩트러짐 없이
근신하며 사는 생활태도에서 나온다.
인품의 향기는 폭넓은 관용과 인자함에서 나온다.
한자락 촛불이 방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계향충만(戒香充滿)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4.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본체청정(本體淸淨)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5.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얼굴이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띄고
항상 웃음을 머금었으며
말은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은
옆에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이 화평해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면상희이(面相喜怡)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6.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이와같이 생활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유연불삽(柔軟不澁)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7.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
하물며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은 꿈에 보아도
그날이 즐거운 사람이 있다.
어떤 분을 만나는 날은 하루가 즐겁고
일이 척척 풀린다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길한 일을 주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견자개길(見者皆吉)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8.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
연꽃 열매처럼 좋은 씨앗을 맺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개부구족(開敷具足)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9. 연꽃은 만개했을 때의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활짝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핀듯한 성숙감을
느낄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
이런 분들과 대하면
은연중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성숙청정(成熟淸淨)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10.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
넓은 잎에 긴 대,
굳이 꽃이 피어야
연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
장미와 찔레는 꽃이 피어봐야 구별된다.
백합과 나리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잡초 속의 보리와 콩인듯
복잡해서 구별할 수 없어서
쑥맥일 수 밖에 없어지는 경우와
사람 자체가 모자라서
쑥맥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혼탁한 사회에서는 숙맥을 자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꽃 앞에서는 절대로 쑥맥이 되지 않는다.
연꽃은 어느 곳에서 누가 보아도
연꽃임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거해도 표가 난다.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겸양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