引燈을 밝히며

2012.03.22 22:42

mumunsaadmin 조회 수:3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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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253
제목 : 引燈을 밝히며
이름 : 대명심()
등록일 : 2011년 11월 25일    조회수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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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의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본시 의지라는 말이 지닌 뜻이 어떤 일을 해내거나 이루어 내려고 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불굴의 의지를 갖는다 해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 중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저한 장벽으로 남는 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생명체로서의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은 하루 하루 그 삶을 영위하면서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또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존재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이러한 존재의 숙명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에서 극명한 차이를 갖는 것일진대 그러한 사고의 힘인 인간의의지로 되지 않는 두 명제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지난 해 여름, 근 삼 십년 만에 그리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인연의 고리는 길고도 깊어 그 오랜 세월동안 어쩌면 한시도 그 염려를 내려놓은 적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내 마음의 기원을 알아주었던지 그 세월이 흐른 때에도 무심치 않게 닿아있었습니다.  아직 단발머리인 모습의 사진 한 장을 지닌 채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 얼마나 기쁘게 안도하였던지 지금도 그때의 반가움이 마음 안에 고운 물무늬를 그려줍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오랜 염려의 인연은 기쁨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역시 세상사 이치에서 예외되지 않아 그 기쁨 뒤에 슬픔을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삼 십 여년 세월, 인연의 시원을 찾아 오르면 그곳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눈동자가 슬픈 한 영혼이 있습니다.  그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슬픈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그 곁에 남아 그 영혼을 지키겠다는 약속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약속한지 불과 육 개월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악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어려서 사람사이의 악속의 어려움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한 약속의 저버림이 한 사람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면 그것은 어쩌면 큰죄일 것입니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그간의 염려는 역시 염려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다만 그 사람의 건강을 염려했더랬습니다.  그러했기에 만난 순간, 건강이 어떠한지부터 확인를 하였습니다.  괜찮다고 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끝내 병원검진을 고집했습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어서 일순 안도했는데 그것은 다음 일을 예비하는 수순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삶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  이제 삶의 끈을 놓고 싶다.”는 독백체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 오랜 세월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던 염려의 실체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혼의 상처는 육신의 그것과 비교될 수 없는 또다른 장벽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마주한 벽 앞에서 나는 또 한번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쓰러지지 않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말입니다.  이제는 그 옛날처럼 어리지도 않고 그렇기에 약속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나는 그 실천의 첫걸음으로 우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작은 절에 그의 이름으로 인등을 밝혀놓았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들러 부처님께 ‘그 사람이 부디 삶의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간절히 절을 드립니다.  나는 기도의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아직도 신 앞에서 머뭇머뭇 길을 찾지 못하면서도 내 어릴 적 어머님의 간원하시던 모습 속에서 어쩌면 절을 찾게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오 년여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걸려온 전화는 문우 한 사람의 비보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한 세미나장에서 의제 발표를 하던 분이 갑자기 현장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처음 전해듣게된 나는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보니 워낙에 급박한 상황이라 바로 수술에 들어가신 상황이었습니다.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전날까지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건필을 빌며 이야기 나눴던 사람이 바로 눈 앞에서 사경을 다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뇌출혈이 계속되는 터라 달리 방도가 없이 수술에 들어간 상황을 듣고는 더욱 망연자실이었습니다.  이어 달려온 문우들과 함께 병원 복도를 지켰던 그 날의 몇 시간은 참으로 길고도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다섯 시간 여의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문우를 보는 일은 더욱 절망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깨어날 확률이 일 퍼센트도 안 된다는 주위 말에 더더욱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의 사람좋게 웃으시던 그 모습을 상기하면서 아무 일없던 듯 일어나시는 모습을 떠 올렸던 방문길은 칠흑이 되었더랬습니다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 길로 나는 어머님께서 다니시던 백련사를 향했습니다.  스님께 간곡한 부탁말씀을 드리고 그 분 이름 석 자를 올려 인등을 밝혔습니다.  그 해 작은 수첩 사이에 아직도 그 날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그 사람의 손을 잡아 그 사람을 집에 데려다 주십시오.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딸들이 울고 있습니다....’
  ‘고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앞으로만 앞으로만 가시면 안됩니다.  부디 뒤돌아 나오십시오...’
  그저 누가 시키기나 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원했습니다.  그 분 가족들도 나처럼 종교가 없다는 말을 듣고 누군가는 신께 기도하는 것이 누워있는 사람에게나, 그를 간호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여 어머니, 내 어머니 종교였던 불교, 부처님께 엎드려 절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도 몇 달을 깨어나시지 못하셨으니 그 깜깜함과 애달픔은 오죽하였을까요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아 기적처럼 삶을 찾으셨습니다.  물론 사고 당일부터 깨어나신 그 순간까지 몇 달을 단 한 순간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던 부인의 정성에 우리 모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절박한 상황에서 인등을 밝히는 까닭이 그 때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직접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부처님 앞에 이름을 고하며 간절히 부탁드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내가 낳았지만 지금은 객지에서 홀로 학업을 이어가는 외동이 딸애를 위해 한 등을 켜고 근 삼십여 년 만에 만나게 된 그 오랜 인연을 위해 또 한 등을 켰습니다.
  이제 글 끝머리에 또 한 등을 밝히게 된 사연을 적습니다.  지난 삼 년여를 외지에 살다 귀국한지 일 년여가 지났습니다.  그 때 많은 분들이 나의 낯선 땅에서의 삶과 건강을 염려해주었습니다.  누구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분들이었지만 특별히 고마운 분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인연도 아니었고 그래서 서로간 쌓아 놓은 정이 많았던 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삼 년 여 세월 동안 틈틈이 주위 사람들에게 나의 안부를 염려해주셨던 고마운 어른 한 분이 계십니다.  물론 귀국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고 그 덕분에 어쩌면, 세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드려주는 누군가의 기도 덕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까이 교분을 쌓으며 삶을 이야기하며 지낼 처지가 되었는데 그만 깊은 병을 만나 계십니다.  이 길목에서 나는 또 다시 반사적으로 인등을 밝히게 됩니다. 
  이 모든 만남이 인연이겠지요.  그 분 곁에서 가족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간병을 하듯이 한 옆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부처님, 저는 기도의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을 위해 간절히 염려하는 마음으로 당신 앞에 엎드립니다.  부디 그들을 지켜주십시오.’

----수필가 김훈동님의 수필입니다.  무문사 신도님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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