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태운 이야기

2012.03.22 22:25

mumunsaadmin 조회 수:1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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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74
제목 : 가슴 태운 이야기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6년 02월 14일    조회수 :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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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 가는대는 가슴 태우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으로 있는 일이다.  즐겁고 반가워야 할 일이 변해서 근심과 걱정으로 둔갑을 해 사람의 애 간장을 끓이는 일이 허다하다.  그 중 한 사건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오래된 이야기 인데 아이들이 적어도 대학은 나온 뒤의 일이었다.  아들 둘과 처제 부부와 함께 캐나다 록키 공원을 들러서 미국 몬타나의 그레이샤 국립공원에 다다랐다.  이미 지구의 온난화로 산의 천년 빙하가 거의 녹아버렸지만 아직도 높은 곳에서는 빙하를 볼 수 있었다.  산이 웅장하고 산중 호수들의 물이 맑아 훌륭한 풍광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각각 행동을 따로 하기로 했다.

우리는 도보로 쉽게 걸을 수 있는 산으로 오르기로 하고 아이들은 좀 험하나 경치가 좋은 그리고 하루 종일 걸리는 하이킹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해가 어두워지기 전에 하이킹 종점에서 우리가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 저녁은 캐나다 쪽으로 북상해서 호텔에 머무르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곳은 시골이라 캐나다 국경 지역에 근무하는 관리는 밤 12시가 되면 도로의 문을 닫고 다음날 아침까지는 문을 열지 않는다.  원래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므로 밤새 기다릴 필요가 없어 퇴근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곳 안내서를 보면 그러한 주의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우리는 처제 식구들과 여기 저기 다니다가 좀 일찍이 만날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꽤 지나도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동안 적지 않은 등산객들이 지나 갔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좀 전에 지나간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흑곰길 도중에 흑곰이 나타나서 겁이 났다고 한다.  시간을 따져보니 도착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가슴을 태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연락할 길도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중년 부부가 나타나서 아이들을 기다리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이 무슨 일이 있는지 걸음을 걷지 못하고 도중 길 위에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직감적으로 무슨 변고가 있음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아래 사람 사는 곳을 찾아 말을 빌리려고 내려갔으나 사람 사는 마을은 찾을 수 없고 대신에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말을 좀 빌려 달라고 했더니 공원 레인저가 직접 말을 몰고 찾아 나서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이모와 이모부는 먼저 소식을 듣고 이미 등산길을 거꾸로 따라 올라 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 달이 떴고 찬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한참만에야 아들 한 놈이 말 등에 실려 나타났다.  자기 엄마를 보더니 눈물을 왈칵 쏟았다.  마중 갔던 사람들과 다른 아들 하나도 모두 무사히 돌아 왔다.  큰아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 낙하산으로 행글라이딩을 하다가 발을 다쳐 수술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아버지가 놀랄까봐 비밀에 부쳐 왔던 것이다.  그런데 긴 산길을 걷다 보니 아픈 곳이 더 아파져서 걸을 수가 없어 도중에 주저앉아 버렸던 것이다.  작은 아들도 무거운 형을 끌고 산길을 더 갈 수가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한다.  기다리는 부모님도 걱정이지만 이 딱한 사정을 기다리는 부모님께 알릴 길이 없어 더 안타까웠다고 한다.

말을 마련해 도움을 준 공원 직원에게 감사하다고 했더니 개인에게 감사 하지 말고 자기네들이 이렇게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부에 알려만 주면 된다고 했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밤 12시까지 국경을 통과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으나 다행히 국경에 도착 했을 때 문을 막 닫으려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으로 해서 새벽이 되어 우리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그 사연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본부에 보냈다.

속상한 일은 종류만 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게 속상하다는 일은 욕심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또 무슨 이유로든 방해를 받아 속상한 일이 있다.  이것은 물론 자기 잘못이 아니다.  가만히 공기 중에 무슨 물건을 놓아두면 저절로 썩어버리는 것과 같이 우리 주위에는 속을 상하게 하는 요소로 늘 둘러 쌓여있다.  항상 경계하고 무엇이 우리를 속상하게 할 것인지 살피는 것을 방심해서는 안되겠다.  또한 더 나쁜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지금의 상황을 다행이라고 생각해 보면 훨씬 가슴 태울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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