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

2012.03.22 22:24

mumunsaadmin 조회 수:17910


=====================================================================================
번호 : 172
제목 : 아들과 나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6년 02월 01일    조회수 : 165
-------------------------------------------------------------------------------------
아들과 나

우리 부부가 결혼 한지 어언 오십년이 가까워진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감개가 무량하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도 결혼식은 우리 두 사람만이 조용하게 하고 싶었고 물론 신혼여행도 좀 특별히 가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결혼식과 신혼여행들은 별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 마련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표준이고 잘 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나는 다른 보통의 사람들과는 같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결혼식도 특별하게 하고 신혼여행도 많은 사람들이 가는 온천장(그 당시)엔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양가의 부모님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서 결혼식은 성당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행했지만 신혼여행은 남과 같이 가는 것이 아닌지라 우리 둘이서 별나게 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출발해 동해안을 거쳐 본가인 대구에 들르고 기차로 서울에 돌아오는 코스였다.  며칠이 걸렸는지는 기억이 없다.  당시는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가는 곳마다 해 떨어지면 예약도 없이 정거장에서 가까운 여관을 찾아들었고 해 뜨면 다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났다.  복잡한 버스 안이었지만 그곳에서 주고받는 아낙네들의 대화며 천천히 달리는 버스창문으로 보이는 바다며 산과 들의 풍경은 지금에 와서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50년 전 그 당시에 그런 신혼여행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얼마 전에 우리 아들 하나가 결혼식을 올렸는데 장소가 멕시코 한 작은 어촌의 해변이었다.  물론 에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지는 못할 나이, 먼 곳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양가의 부모님들과 가까운 친지들이 멀리서라도 참석해 주었다.  전통 멕시코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이며 해가 저물어 가는 해변의 풍경이 나에게는 어느 교회나 성당의 풍경보다 훨씬 훌륭해 보였다.  에비가 못해본 것을 어쩌면 아들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듯 에비의 원은 서로 의논하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든 전해지는 것 같아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 먼 곳까지 찾아와 말 한마디 없이 지나기에는 너무 서운할 듯해서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짧은 말을 했다.
“오늘 이 결혼식에 부모로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라 하면 너는 왼쪽으로 갔고 왼쪽으로 가라 하면 오른쪽으로 갔으니 지금 와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앞으로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소원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결혼식에 참석 못한 사람들을 위해 피로연을 따로 열었는데 그때도 불청 이었으나 중대사인 만큼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가 좋을 것 같아 또 한 마디를 하게 되었다.  “결혼식이란 축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축복 받는 결혼 생활이 되기를 서로가 서약하는 것이니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함을 명심하기 바란다.  벌레에 쏘이기만 해도 많이 괴롭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작은 상처만 나도 온 몸이 쑤시고, 이빨 한 개만 말썽을 부려도 온 세상이 난동을 치는 것 같이 괴롭듯이 부모들은 자식 때문에 가슴에 큰 구멍을 안고 산다.  이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내 힘으로 메울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자식들에 의해서 메워질 뿐이다.  그런데 오늘 너희들의 결혼과 더불어 그것이 메워지는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해지는 구나.”
짤막한 말이나마 그것이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는 가끔씩 자식이 잘 되면 즐거워하고 혹 잘못되거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속상해 한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되기를 원하지만 한 몸이 아닌 이상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결국 몸을 달리한 또 하나의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흡족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것은 또 다른 자신의 모상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당연히 자식도 자신 아끼듯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또 하나의 자기 모습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내가 원하고 하고 싶던 일들이 일부러 타이르지 않아도 자식들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잘못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잘못이 된다.  따라서 자식이 잘 되게 하려면 우리는 만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죽어서 다시 태어날 자신의 모습을 기다릴 것 없이 살아서 보는 자식들의 모습, 그것이 바로 다음 생의 자기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바로 자신을 타이르는 말이 아닐런지?


=====================================================================================

무문사 [Mumunsa]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