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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67
제목 : 엠마(Emma)가 가르쳐준 따뜻한 세상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5년 11월 03일    조회수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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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나의 세 살 된 손녀딸의 이름이다.  얼마 전에 며느리한테서 편지 한 통이 날라 왔다.  엠마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모금 운동을 하는데 아이들이 유치원 마당을 돌면 한 바퀴 돌때마다 얼마씩 돈을 내던지 혹은 몇 바퀴를 돌던지 상관없이 일정한 금액을 기부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엠마가 모처럼 모금을 한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우리는 한 바퀴 돌때마다 1불씩 주겠다고 사인을 해서 보냈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합쳐서 한 바퀴에 2불을 주게 되는 것이다.  세 살짜리가 돌면 얼마나 돌까 싶었지만 그래도 많이 돌도록 격려하는 글도 함께 보냈다.

며칠 후 엠마가 서른네 바퀴나 돌았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운동장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보지 않아 알 수 없으나 둘이서 10불 정도면 되리라 생각 했는데 68불을 내놓게 되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장 크기를 생각해서 세 살짜리가 설마하니 몇 바퀴나 돌겠느냐 하면서도 많이 돌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많이 돌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아마 운동장 크기가 우리 집 안방만 했던가보다.  다음에 아들 집에 가게 되면 엠마의 유치원을 방문해 봐야겠다.  돈을 보낸지 며칠 후에 고맙다는 글과 엠마가 모금 참피온이 되었다는 소식이 사진과 함께 왔다.  우리 손녀딸이 예쁘고 기특했다.

미국에는 별의 별 모금 방식이 다 있다. 무조건 헌금을 하라는 식, 가정에서 흔히 쓰는 물건들이나 과자류를 사 달라는 식의 방법이 있는가 하면 엠마의 경우와 같이 자기가 수고 할 테니 대신 돈을 기부하라는 방식이다.  이 방법의 대표적인 예는 마아치-오브-다임(March of Dime)이다. 암환자, 폐질환 및 기타 병 치료를 위한 연구비 조달이나 환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의 한 방법으로 모금원이 돈을 기부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몇 마일씩 걷는 방식이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를 걷겠으니 마일 당 얼마씩을 내 놓으라는 식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당신은 건강한 몸이니 건강치 못한 사람에 비해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인가 그것을 걷는 것으로 표현 하면서 감사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과 사정이 여의치 않는 사람은 대리로 걷게 하고 대신 돈을 기부하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이렇다.  세상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게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이 생을 즐기면 그 반대로 수고하고 고생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즐거우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가진 부의 일부를 내어 놓던지.
엠마가 다니는 유치원의 모금취지는 그곳 유치원생의 부모나 조부모등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꼬마 유치원생들이 대신 할 테니 가족 되는 어른들이 그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행복하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내가 치루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우리 부모나 조상이 치렀을 것이다.  혹 아무도 치루지 않았다면 내가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차지하고 대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에 일정량의 행복과 일정량의 불행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나 국가가 치부한 행복 때문에 또 다른 일부는 불행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모금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시카고에 있는 큰 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름철이면 깡패 같은 복장을 하고 몇 십 명씩 때지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모터사이클 패거리가 종종 눈에 뜨인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모든 주위의 압력에서 벗어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도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이런 행사에 참여 하려면 그룹의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자기가 속해 있는 그룹에 적어도 일 년에 3만불 이상의 자선사업을 위한 기부를 하지 않으면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언제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대가를 먼저 치뤄야하고 또 모금에 응하는 사람은 그 자선의 목적에 찬동하고, 자기가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대신 즐겨 주기를 바라고, 자기가 즐기는 것같이 흡족해 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금의 예는 한둘이 아니다.

세상이 험하고 혼란하다고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사연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으로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추워지는 계절에도 마음이 한결 따뜻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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