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은혜를 베풀겠습니다.

2012.03.22 22:20

mumunsaadmin 조회 수:17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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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54
제목 : 대신 은혜를 베풀겠습니다.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5년 08월 09일    조회수 :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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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기는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시절 공군 장교로 있을 때 미국에 항공기 정비기술 교육을 받으러 온 일이 있었다.  나는 매월 받는 급료를 쓰지 않고 모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가난한 시절이라 적은 달라 이지만  모은 돈이 그때 기준으로 하면 적은 돈이 아니었었다고 생각한다. 하기야 미국 기지 안에서는 담배 한 갑에 십 전 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Mr. H 라는 한국 유학생을 알게 되었고 그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나를 여러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내가 그곳을 떠날 때 쯤에는 Mr. H는 이곳 대학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동부의 명문 대학의 박사 과정에 입학이 되어 떠나게 되어 있었다.  유학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임을 다 아는 바이었다.  특히 인문과학 전공 학생 일 때는 더욱 그러했다.
Mr. H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떠날 때 그가 나에게 어렵게 돈 부탁을 했다.  나는 쾌히 모은 돈 전액을 건내 주고 내가 미국에 공부하러 오면 그때는 Mr. H도 공부는 끝이 났을 터이니 그 돈은 돌려 주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나는 맨손으로 한국으로 돌아 왔다.  선물도 별로 갖고 오지 못했다.  어머님은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 가시는데 돈을 갖고 왔으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  아들이 한 일이 별로 달갑게 들리지는 아니 했으리라 그러나 별 말씀은 없으셨다.  그 후 미국의 Mr. H로부터  엽서 한 장이 온 후에 연락이 끊어졌다.  그리고 나도 미국에 가고 싶었으나 군대 사정과 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Mr. H에게는 수차 연락을 취해 보았으나 회답 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수년이 지난 후 Mr. H와는 관계없이 나는 미국에 공부를 하러 올 수가 있었고 여러 해가 지난 뒤 여러 곳을 거쳐 미시간에 와서 살게 됐다.  Mr. H의 일은 이미 잊은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Mr. H 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미시간 모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H 교수를 찾게 되었고 다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지난 일은 미안 하다고 사과 했고 나도 지금은 그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H 교수도 얼마를 갚아야 그때의 빚을 갚을 수 있는지 난감해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기가 기르는 좋은 강아지 한  마리를  줄 터이니 그것으로 빚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나도 그의 뜻을 받아 들이기로 하고 그 일은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다.  나에게는 그 강아지 한 마리가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H 교수에게는 큰 미련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집에 강아지를 데리고 온 몇일 후 동네에 사는 한 젊은이가 그 강아지를 탐을 내기에 나는 그에게 강아지를 서슴없이 내주어 버렸다.

우리는 매일 여러 사건들을 만난다.  하루는 차를 몰고 가는데 도로에서 두 손을 들고 내 차를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차를 멈추었더니  자기 차에 가소린이 떨어져 길에 서 있으니 가까운 주유소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한다.  그 사람을 가까운 주유소에 데려다 주었더니  감사해 하며   하는 말이 서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 날 대신 해서 그 고마움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겠다고 했다.  참 사리 밝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일이란 은혜를 베푼 사람은 그 받은  사람으로부터 되돌려  받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그 자식은 또 그 자식의 아이들을 돌 보는 것과 같은 이치 인듯싶다.   아마도 H 교수는 많은 어려운 학생들을 돌봤으리라고 믿는다.

내 한 생에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 도움을 받은 일도 없지 않다.  예를 들면 미국에 처음 와서 대학교에 등록금 전액을 다 주고 첫 학기 등록을 했는데 신청 하지도 않은 등록금 전액을 돌려 받게 되고 졸업 할 때까지 수업료도 전액을 면제 받았다.  이 금액은  H 교수에게 빌려 준 금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H 교수 한테서  못 받은 것이 너무 측은 해서 대신 나에게 내리신 일 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많은 은혜를 입고  산다.   우리가 우리의 덕이나 재주로만 산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 누구인가가 우리를 살피는 것 같고 우리가 무엇을 하며 또 무엇을 했는가를 헤아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한 일에 보상을 바랄 필요는 없다.  나는 항상 보상을 이미 아니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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