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이야기 (2)

2012.03.22 22:08

mumunsaadmin 조회 수:17755


=====================================================================================
번호 : 121
제목 : 복 받는 이야기  (2)
이름 : 각 산()
등록일 : 2005년 03월 02일    조회수 : 187
-------------------------------------------------------------------------------------
복 받는 이야기 (2)

지난번에도 쓴 바 있지만 복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받을 만한 사람은 그

가 원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받게 되는 것 같다.  복을 빈다는 것은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복을 빌려면 자신을 위해 빌지 말고 남을 위해 빌어야 한다.  그게 바로 복을 짓는 것이리라. 

그러다 보면 기다리지 않아도 모르는 사이 내게로 복이 온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 중에 대학 동창이고 일본에서도 함께 지낸 적이 있는 Mr. Lee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 와서 살듯, 이 친구도 카나다 온타리오 지역에 이민 와서 살았었다.  똑똑하고 경우도 밝았

으며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항상 발전소가 있는 한적한 변두리에 살았다.

우리는 조용한 휴양지라 생각하고 여름이면 곧 잘 찾아 가곤 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잠시 일본

에서 살게 되었고 Mr. Lee 와는 자연히 연락이 끊겼다.


몇 년 후 우리는 다시 미시간으로 돌아와 정착하게 되었고 어느 날 모임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Mr. Lee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어느새 우리와는 격이 다른 갑부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알기로 발전소의 월급 쟁

이 엔지니어로는 아무리 돈을 모아 봐야 그 기간 동안  갑부가 된다는 것은 꿈에서나 있을법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사연이 있는 것 같아 지인들에게 알아보니 카나다에서 복권에 당첨 되어 갑

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카나다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분할 지불이 아니고 복권에 당첨

되면 세금도 떼지 않고 그냥 일시불로 내어준다.  몇 년 만에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해보니 그

모든 게 사실이었다.


우리 부부는 친구의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오랜만에 반갑기도 하여 그 친구의 새 집으로 찾아 갔다. 

옛날 같으면 그 집 부인이 직접 만든 요리로 우리를 대접했을 터인데, 부자가 된 그는 우

리를 고급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그는 주위에 부자티를 내지 않으려고 사는 동네에 어

울리는 수수한 집을 짓고, 자동차도 보통들 타는 쉐보레 웨곤을 몰았다.  직장은 동료들이 어서

자리를 물려주고 쉬라고 아우성들을 쳐서 그만 조기 은퇴를 하였다고 했다. 


이야기인즉; 그 해는 유난히 직장에 일이 많아서 잔업 수당을 꽤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한다. 

돈도 좋지만 몸이 지쳐 쉴 겸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이들도 학교를 하루 쉬게 하여 온 가족이

토론토로놀러 나갔다.  이튿날 아침에 피우던 담배가 떨어져서 호텔 로비로 가 담배를 산 후

거스름돈이 생겨 별 생각 없이 눈에 띄는 복권을 한 장 샀다.  이것이 즉석복권이라 무심히 긁어

보니 새 복권 한 장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계속 석장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은 즉석 복권

이 아니고 추첨식이라 일주일 후에 신문에 당첨발표가  나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 혹시나 하여

맞춰 보니 놀랍게도 당첨이 되었단다.  그런데 그런건 남의 일이지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게 아무

래도 믿어지지가 않아 동네 도서관에 가서 다른 신문을 뒤져봤는데 자기 번호가 틀림이 없었다

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기쁨 보다는 고민이 시작 되었다.  당첨금을 찾으러 가야 할지? 말아

야 할지? 물론 식구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정을 못한 채로  유효기간 하루 전 날

까지 망설였다. 이것을 타면서 변하게 될 자기 삶이 감당이 안되었다.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

지 도무지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렇지만 굴러 들어온 복(거금)을 외면하기에는 좀 아깝기

도 해서 마지막 날 돈을 찾으러 토론토로 나간 그는 그 사무실 앞에서 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사무실 측에서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돈을

찾으며 자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으나이것은 공식적으로 밝혀야 하는 돈 이라서 그렇

게는 안된다고 했다.  그 돈을 받아들고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데 라디오에서는 십오 분 마다

뉴스를 통해 자기 이름이 나오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세 시간이

걸리던 거리였는데 빨리 달린다고 생각 했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다섯 시간이나 걸렸단다. 

그가 살던 동네는 작은 시골이라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이미 축제 분위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러 집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모두들 아는 일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살 수도

없고 해서 결국은 그 동네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낯 설은 새 동네로 이사를 갔다.  물

론 직장도 못 붙어 있게 되기도 하여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동네로 간 것이다.  이사

를 결정하고 떠나는 날 까지도 가게를 가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알아봐서 원치 않는 유명인이

되었단다.


그때만 해도 Mr. Lee 노 부친이 살아 계셨고 그는 여러 형제중의 막내였다.  이 집안은 모두 장

수하는 집안이라 재산은 할아버지에서 바로 손자로 전해진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

을 물려 줄 때가 되면 아들들은 벌써 은퇴한 뒤고 아들들이 자기 재산이 많으니 별로 물려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손에게 큰 몫이 넘어 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이

막내아들에게 넘겨주고 싶어 했다. 이유인즉 이아들이 아직 은퇴 할 나이도 아니고, 자기의 장손

과는 동갑이라는 것이다.  막내아들은 젖이 떨어지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고 형수의 젖을 조

카와 같이 얻어먹고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때도 체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것을 그의

아버지는 늘 측은하게 생각했었다.  서울에 들를 때 마다 아버지는 재산을 좀 정리해서 가져가라

고 종용 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는 자기가 별 어려움이 없이 살고 있으니 필요하지 않다고 하며 

그냥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가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관습대로 그 후 장손에게 많은 재산을 물

려 주었다고 한다.


복권이 당첨된 후 아버지에게 인사차 선물을 가득 장만해서 서울로 찾아 갔다. 지난 일을 보고

하였더니 아버지 말씀이 그렇게 작은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했는데 본인이 원치 아니

했으니 대신 하늘이 도와서 한 몫을 해준 것 같다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아버지가

그 손자에게 물려준 재산은 그 복권의 액수 보다 열 배도 넘는다고 한다. 서울의 구 법원 변두

리 땅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의 땅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재력가셨던 모양이다. 재산을 물려받은

동갑내기 장조카는 그 후 이 삼촌에게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삼촌이 서울에 들리면 항상 일

류 호텔에 머물게 하고는 임금같이 모신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  그는 또 카나다의 뱅쿠버에 휴가를 갔었는데 호텔에서 무심히 복권을 한 장 집었

다가 토론토에서의 경우가 또 반복되기 시작해서 당황하여 그 복권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일

본에 있을 적에는 Mr. Lee가 우리 관사로 자주 드나들었다.  산토리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

하면 항상 젖 떨어지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늘 그리워했다.  아마도 그는 어머님의 모습도

기억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려 막내아들을 측은히 생각하는

마음이 가시지 아니 했으리라.  그 아들이 불편 없이 잘 살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고 자식까지 있

는 아들이 손자들 보다는 항상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복은 이렇게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주어지는 것이며 가령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받을 자격

이 있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주어지는 모양이다. 복은 바라지 말고 그저 짓기만 하면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복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 생각된다.


=====================================================================================

무문사 [Mumunsa]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