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이야기 (1)

2012.03.22 22:07

mumunsaadmin 조회 수:17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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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20
제목 : 복 받는 이야기 (1)
이름 : 각 산()
등록일 : 2005년 02월 08일    조회수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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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는 이야기 (1)

   내가 알기로 세상에는 복 받은 사람이 많다.   우리는 모두 복 받기를 원하나  복이란 원한다고 받아 질 수 있는 것인가 ? 복 받은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내가 아는 이야기를 2 회에 걸쳐서 써보고자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박 모라는 사람이 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고 서울대학교 농대를 나왔다 .  그는 어찌어찌 하다가 카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원예과를 전공했으나, 카나다 에서 자기의 전공에 맞는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맞춰 찾아 간 직장이 한 공동 묘지였다. 그곳에서 원예사로 일을 하게된 그는 매일 정원을가꾸고, 꽃을 기르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그는 그저 열심히 일했다.  물론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배운 원예 기술을 성심껏 발휘해 그 공동 묘지를 자기 정원처럼  정성을 다해 가꾸었다.  그리고 그는 그 공동 묘지에 뭍혀 있는 고인들의 기일을 알아내 하루 하루 기일이 된 묘에 꽃을 꽂았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저 고인을 위하는 그의 마음이었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날, 하루는 노 신사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아내의 기일에 성묘를 왔는데, 그날도 묘지에 꽃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해째 보아 왔으나 그날은 묘지 사무실로 찾아가 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신사는  그것이 공동묘지의 업무 차원에서 그렇게 해주는 것인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측에서는 모르는 일 이라고 했다. 이것이 한 번도 아니고 기일마다 꽃이 꽂혀있으니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알아 보았더니 바로 정원사로 있는 한국인 박 씨가 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박 씨는 누가 오든 말든 정원이나 온실에서 키운 꽃을 꺾어  기일을 맞은 묘지에 그게 누구의 묘든간에 장식을 하곤 했다.  크게 감동을 받은 그 노신사는 박씨에게 면회를 청했다.  박씨가 고맙기도 했지만 이런일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그 주인공을 더욱 만나고 싶었다.  노신사는 박씨의 마음씨 착함에 놀랐을 뿐  아니라 그 성실함이 믿음직스러워 그에게 반한 나머지 박 씨를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소원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박씨의 대답은 뜻밖에도 '농사를 크게 지어 보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카나다 나 미국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여간 자금이 많이 드는게 아니다.  우선 땅 크기도 넓어야 하지만 면적이 넓은 만큼 사람손으로나  소나 말로 경작 하는 것이 아니고 기계를 움직여야 했다. 또 그 기계 한 대 값이 자그마치 백 만불이 넘는 농기구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대대로 농사를 짓는 농가의 출신이 아니면 농사를 짓는다는 일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아니면 은행에 연줄이 있어 자금을 융자 받을 수 있는 사람 이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 노인은 박 씨를 돕고 싶었다. 박 씨에게 말 하기를 자기는 "돈은 많은데 나이도 많고, 그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계획도 없었으니 얼마든지 갖다 쓰고, 돈을 많이 벌어 갚을 형편이 되면 기한에 구애 받지 말고 무이자로 돌려 주면 된다" 고 했다.   그 노인은 박씨가 반드시 성공을 할 사람이고, 또한 남의 돈을 때어 먹을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후  박 씨는 그 노인의 도움으로 농지와 농기구를 구입하고, 농장도 캘리포니아, 후로리다 그리고 카나다의 온타리오 등 몇 군데나 경작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노인이 밀어준 액수가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농장 경영을 크게 시작은 했지만 박 씨는 고소 공포증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 하는)이 있어 이곳 저곳 다니는 것이 어렵게 되어 결국은 온타리오 농장만 남기고 다른 농장은 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가지고 싶어 했던 큰 농장을 가져 보았다.  
    내가 박씨를 찾아 간곳은 온타리오의 농장이었다.  그의 집은 농장 한가운데 농장을 훤히 바라 볼 수 있도록 설계 된 전원주택이었다.  설계사도 한국에서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또한 그 집은 자기 땅에서 나는 천연 가스로 난방도 하고 취사도 했다.  옛날에 한 가스 회사에서 쓰다 버린 파이프가 아직도 땅밑에 묻혀있어 가스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고 했다.  내가 박씨를 만났을 때에는 벌써 빌려 쓴 돈은 다 갚은 후였고, 그 넓은 농장과 농기구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된 뒤의 일 이었다.  넓은 농장에는 여러 가지 야채가 심어져 있었고, 야채들은 토론토와 뉴욕 등지로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해마다 내가 박 씨를 찾는 이유는 늦은 가을에 김장감을 사러 가기 위한 것이었다.  김장 채소들을 한 차 싣고 와서 가까운 친지들께 두루 나눠드리고 우리도 그것으로 김장을 했다.  박씨 집 에는  야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꽃 사슴도 기르고 있었다.  노사 철이 되면  정부의 협조를 받아 남미 지방에서 철철이 일꾼들이 몰려 오곤 했다.  물론 인근 한국 사람들도 도우러 왔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일 자리도 마련해준 셈이었다.  그런데 성공한 박씨에게도 고민이 있었는데  그건 이 농사일을 이어 받을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하나 있기는하나 농사 짖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 자기는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을 구해 집을 나가겠다고 하고  딸이 하나 있는데 농사를 경영할 사위 감을 얻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몇 년 간을 해마다 김장감을 사러 나이아가라 폭포 근교에 있는 박씨 농장엘 갔었다.  한 세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어서 바람도 쒤겸 놀이 삼아 다녀오곤 했었다.  그 후 우리가 일본에서 몇 년을 살게 되었다.  돌아온 이듬해 김장철에 박씨 농장을 찾아가는데 날도 저물고 시골길이라  어두워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았다.  고생 고생 하며 찾아 갔더니 농장 한가운데 있는 큰 집엔 전등이 꺼져있고 인기척도 없었다.  집 주위를 돌아 창고 쪽으로 가니까 어떤 서양 사람이 따라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박씨 이야기를 했더니 박씨는 이 농장을 정리 하고 떠났는데  행선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좀  섭섭했다.  그동안  재산은 착실히 잘 모았을 터이고 아마도 좋은 곳으로 가서 큰 사업을 하거나 아니면 이제 편안히 쉬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씨는 복을 원했을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 했고, 자기의 할 일을 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산 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영혼에게 까지 즐거움을 주기위해 정성을 쏟았다.  이것이 그가 복을 지은 방법이었다.  그가 복을 짓고자 의식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주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고, 덕분에 우리집 식탁에도 맛난 김장김치가 올라오지 않았던가.  복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그저 짖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을 받고자 하지  아니해도 받을 사람에게는 은연중에 주어 지는 것 같다 . 부처님께 아무리 복을 빌어도 소용이 없고 그만한 정성으로 남을 위해 복을 지으면 남이 내가 빌어준 복을 받고, 남이 나를 위한 마음으로 복을 지을 때 나에게도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되는 것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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