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2012.03.22 22:06

mumunsaadmin 조회 수:17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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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11
제목 : 한 생각
이름 : 각 산()
등록일 : 2004년 11월 20일    조회수 :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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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밤하늘을 처다 보기를 좋아했다 무엇인가 즐거웠고 황홀 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 느낌은 마찬 가지다. 어릴 때 신변에 변화가 없었으면 아마도 천문 학자의 길을 밟았으리라. 바다의 물을 보면 마음이 잔잔 해지고 산속의 숲을 보면 마음이 시원해 지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과 친근 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별도 우리와 무관 하지 않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

천당을 아무리 헤메어 봐도 텅 빈 허공뿐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데 왜 사람들은 죽으면 천당 가기를 봐라고 또 그렇게 가르칠까 ?  모두가 문맹 해서 일까 ?

우리가 태어 날 때는 밖에서부터 부모의 몸을 빌러 태어난 것은 누구나 익혀 아는 봐 이다  그러면 허공이 아닌 실체에서 왔음 틀림이 없을 터인데 그 실체가 어느 곳 일까 ? 낮 하늘 에는 해가 떠있고 밤하늘 에는 달이 떠있다 그 뜨거운 불 덩이 해 속에서 왔을 이유가 없고 더욱이 그 차거운 달에서 왔을 이유도 없다. 어두운 밤 하늘 이나 새벽 하늘을 보라. 거기에는 무수한 별과 은하수가 보인다 텅 빈 하늘에서 우리가 온 것이 아니고 아마도 저 별 이거나 은하수에서 온 것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저 하늘의 별들과 저 은하수의 별들의 수 는 이 지구상의 과거 현재의 영혼들의 총수와 미래에 올 영혼들의 총수를 합한 것 보다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내 별 일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가 돌아 갈 곳에는 관심이 없고 버리고 가야 할 곳에만 늘 집착을 하는지 ?

나는 어두운 밤이면 내 별을 찾아 헤매곤 한다. 비록 내가 내 집을  찾지 못해도 내 집이 저 하늘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은 한 없이 즐겁다. 구름이 끼었거나 날이 흐린 날이면 걸음 거리가 힘이 들고  발 걸음이 무거워 진다. 내가 돌아 갈때 까지는  내별 을 알겠지만 그것을 미리 알았으면  내 마음이 얼마나 즐거울까 ?

그 별들의 거리는 이 지구에서는 너무나 멀다 아마도 가까운 별이면 수 천년에서 먼 별이면 수 십만년이 걸려야 이 지구에 도착 한다, 그것도 이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로 움직였을 때 의 이야기이다. 티끌 만큼의 무게의 질량 이라도 운동 에너지는 무게에다 광속도의 자승에 비례 하기 때문에 그 먼 거리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여행 하기에는 불가능 한 것이다. 그 먼 거리를 그 빠른 속도로 그 긴 시간으로  갈려면 작은 티끌 이라도 가속이 되면 그 무개가 수미산 보다도 무거워 지니 무슨 힘으로  그 무게를 감당 하겠는가 ?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빈 손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중도에서 낙오 하였을 것이다. 저 하늘의 별과 별 사이에는 우리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많은 내왕이 있을 것이다 . 가끔 우리는 밤 하늘에  별똥을 본다 지구를 향해서 오든 다른 별을 향해서 가든 도중에서 사라지고 만다 아마도 그 무게를 지탱 하지 못 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갈 때도 마찬 가지다. 사물에 연연하거나 무엇을 아쉬 워 하거나 하면 내 집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자멸 하거나 분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또 다시 수 천년 수 십만년 이 걸리는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의 삶을 번개와 같은 짧은 인생 이라든가.  이슬과 같은 한평생 이라고 한다. 비록 우리에게는 이 삶이 길게 느껴지지만 이몸을 찾아 온 것과 이몸을 떠나서 가야 할 길에 비하면 짧은 순간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가야 한다. 무게가 있는 모든 실체를 버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체가 없는 욕심도 미련도 버리지 못하면 본 고향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공중분해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매우 많은 집착을 하면서 그 긴 여행을 위한 준비나 참된 내 집의 일에는 소월하지는 않는지 ? 더 더욱이나 그 여행이 임박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

우리 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감각(안 이 비 설 신 의)은 이 세상 살아가는데 족할 뿐이지 그 이상의 일에는 무용지물 이지만 또 다른 감각을 되찾을 때까지 깨끗하게 잘 길드린다면 우리는 세상 밖의 일을 조금은 알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는 잘 낫다고 뻐기는 사람이 있다.  많이 안다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기는 너무나 부족하고 우리의 주어진 감각은 그 기능이 너무도 제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많은 것  중에 조금 밖에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눈은 제한이 되어있어 너무 어두운 것도 못 보거니와 너무 밝은 것도 못 본다. 우리 육안으로 태양을 보면 혹은 작열하는 용광로의 속을 바라보면 눈이 상한다. 세상에는 별별 소리가 울리고 있지만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그 일 부분이다.  더욱이 소리가 너무 요란하면 고막이 상하고 만다,
색깔 또한 그렇다, 우리 눈에는 삼원색과 그 삼원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무지개 밖에는 식별 못한다. 온도도 마찬가지다, 너무 차면 얼어 버리고 너무 열이 높으면 타 버리고 만다.  어디   실례가 그것 뿐이겠는가 ?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 예를 들면 우리 몸에 느끼는 흔들림을 생각 해보자 배를 타거나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수가 있다. 사람의 몸이나 물체에는 고유 진동 수치(약 10 허츠, 허츠는 1초 동의 진동수) 가 있는데 몸에 미치는 진동수가 같으면 몸이나 물체를 쉽게 상하게한다, 배를 탓을 때 물의 파도의 진동수가 혹 은  차를 탓을 때 도로면의 굴곡이 우리 몸의 진동수와 일치 하면 속이 상하게 된다,  진동의 강도가 더 심해도 진동 주기가 몸의 고유진동 보다 적거나 높으면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진동수에서 우리 몸을 마구 흔들어도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이것을 반공진수라고한다. 이 반공진수의 관한 재미있는 실례가 있다.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는 그 매부리로 나무를 치지만 머리하나 다치지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나무를 쪼는 진동수가 자기의 반공진수와 (약 19 허츠) 동일하기 때문 이다.

아침 해가 뜰 때나 저녁 달이 뜰 때에 간혹 그 모습이 장관 일 때도 있는데 이런 때는 아마도 웅장한 교향곡이 울릴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듣지 못할 뿐이다. 아름답게 핀 꽃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다만 우리는 들을 수있는 귀가 없을 뿐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 하며 또 느끼지도  못한다, 이렇게 우리들의 기능은 너무도 제한 되어 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알게 되고 그저 겸손해 질 뿐 이다. 식물이나 다른 생물들이 우리인간 보다 다른 범위의 감각기능을 가진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가진 육감으로 모든 세상 일을 알려고 하지 말고 옳다 그르다 하지 말라. 우리는 제한된 공간에 속박 되어있고 그것이 아는 것의  전부이다,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하면 그저 겸손 하여라.

가고 오는 것도 중요 하지만 왜 우리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터득 한다면 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편하고 즐거울 수 있는지 모른다. 오는 것도  즐거움이요 가는 것도 즐거움이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삶을 꾸미고 뭇 영혼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 들은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는다, 그러면 예수나 부처가 천당으로 인도한다고 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옛날에 돌아갔습니다, 눈도 없고 손도 없고 발도 없습니다, 무슨 힘으로 당신의 고달픈 영혼을 도와 줄 수 있을까 ?  그 분들은 살아 생전에 산 영혼들과 태어날 영혼들에게  미리 각자의 할 일을 가르쳐 주셨을 뿐 이다, 당신이 만일 도움이 필요하면 산 영혼이나 자기 스스로에게 도움을 청하라. 오직 산 사람 만이 산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자기 본 고향으로 돌아 갈 때는 아무도 도와 주는 자는 없다,  다만 자기가 스스로 준비하고 홀로 떠나야 한다,  물론 동행자도 없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고 목적지도 천차 만별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이 짧은 세상의 삶을 재미 있게 살 필요는  있다.  우리에게는 그 안 이 비 설 신 의(眼 耳 鼻 舌 身 意)가 주워져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육신과 함께 있을 때 유용 한 것이지 이것으로 이 현세상 밖의 일을 감각 하는 데는  무용지물 이다. 따라서 본래의 감각을 되찾기 전에는 현세 밖의 일을 판단 하지 말라.  모든 즐거움 모든 만족은 그 한계가 여기에서 제한 된 것이지  더 이상 연장  할 수 없다. 즐거움과 행복을 바라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 한 것이 아님을 알라. 슬픔과 고통이 견디기 힘 들지만 그것 또한 잠시 인 것을 알라.

어릴 때나 젊을 때는 세상이 짧은 줄도 모르고 열심히 잘 살려고 한다,  당장 현실이 바빠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바가 없다.
이제 우리의 마감이 다가 오면은  어디서 왔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않을까 ?  온 곳을 알면 가는 곳도 알게 되겠지?. 세상일은 모두가 강력한 원에 의해서 그리고 착실한 준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은 없다. 저 넓은 바닷가의 모래를 보라, 그 높은 산들의 바위들이 티끌 만한 모래알로 변하지 아니했는가
우리도 강한 원을 세우지 않고 준비가 없으면   우리의 참 나도 어차피 버려할 몸을 따라서 공중분해 되어 버리고 만다.
  
별이 밝게 비치는 밤이면 밖에 나가  하늘의 별을 보고 어느것이 내 별 인지를 찾아라, 그러노라면 별과 내가 친해져서 언젠가는 참 나의 집을  찾게 되리라.
내가 올 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이유를 알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임을 알게되고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는 것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

각 산
미쉬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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