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축사

2012.03.22 22:18

mumunsaadmin 조회 수:2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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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45
제목 : 결혼 축사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5년 06월 03일    조회수 :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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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사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결혼 30 주년을 맞던 날 우리 부부는 일본 후지 산 근처의 하꼬네 호텔에서 쉬고 있었는데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 여비서의 결혼식에 호출을 당했다. 자기 결혼식에 와서 신부 가족 대표로 축사를 해 달라는 것 이었다.  일본의 보통 결혼식은 격식이 정해 있어 어느 결혼식이나 거의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축사순서에는 사회자 외에 각 가족대표 한 사람씩 그리고 신랑 신부 친구대표 한 사람씩 하게 된다.  축사 내용도 어느 누가 결혼을 하든 거의 공식에 있는 몇 가지 형태의 축사뿐 이다.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일본 사람들의 공식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미리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갑 자기 호출되었으니 즉흥적으로 이야기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이나 혹은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보통은 “결혼 축하 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나의 축사는 그것과는 달리 “결혼이라는 것은 축하 할 일만은 아니다” 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결혼 식장은 찬 물 끼얹은 것 같이 조용해졌다.  나는 벌서 결혼 한지 30 년이 지났고 아이들 넷을 길렀으니 적어도 결혼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축복 받는 결혼을 하려면 신랑 신부가 많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 하고, 서로 사랑 하며 좋은 결과가 얻어 지도록 많은 노력을 한 다음에 그 후에야 축복을 받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않은 시작부터 축복을 받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며, 앞으로 열심히 살고 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바람인 축복 받는 결혼이 되도록 노력 하라고 말을 하고 축사를 마쳤다.  그때서야 관중들이 박수를 치고 처음 놀랐던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식이 끝나고 많은 여자들이 모여와 자기 결혼식에도 나에게 축사를 부탁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자기 결혼식에 와서 축사를 해 줬으면 했다. 어떤 나이든 노 총각들은 결혼을 빨리 하지 않은 이유로 내 이야기 대로 축복 받는 결혼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핑계 삼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항상 틀에 박힌 축사만 듣다가 내 축사를 듣고 좀 색 달라 재미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틀에 박힌 닮은 꼴이 너무 많다.  각자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회사원들은 각자 개인 휴가라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자기만 따로 휴가 가는 법은 거의 없고 전 사원이 휴가를 동시에 간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는데 자기만 휴가를 가면 불안해서이다. 자동차 색도 그러하다 한 동네 사람이나 같은 회사 동료들의 차 색깔은 모두 비슷하다.  자기 혼자 유별난 색깔이면 그것도 불안해서이다.  물론 예외는 없지 않지만 말이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에 비해 대체로 똑똑한 사람이 적고 또 잘난 척 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똑똑 하고 훌륭해야 한다.  지도자는 자기 부하를 잘 살피고 그들의 안녕이나 발전을 위해 정성을 다 해야 한다.  또한 부하들은 그것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한국보다 못난 사람들이 많지만 소수의 지도자를 잘 따르고 불평을 적게 하니 사회 전체적으로는 똑똑한 사람이 많으나 질서 가 잘 잡히지 않은 사회 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안정 되어 있다.
물론 똑똑해도 그 규범이나 테두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살기 힘들다.  그러나 한번 인정 받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보장되어있다.  지도자로 인정 받아 그 테두리에 들게 되면 앞일은 별 걱정이 없다.  또한 인정 못 받은 사람은 그저 일벌 인양 생각하고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만 충실히 하면 버림은 받지 않는다.  그렇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빨리 단체 생활에서 빠져 나와 자기 독자의 길을 가야 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이 간단 명료하다.  입사 시험 중에 면접검사가 있는데 응모자들은 일단 면접시험에 필요한 책을 읽고 온다.  그런데 책에 전혀 없는 질문을 하면 열명 중에 아홉은 대답을 못한다.  이렇게 그 사회는 공식에 의해서 살고 있고, 장가 시집 가는 행사도 모두가 공식에 의해서 행동  해야만 두려움이 없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과 같지 않으면 곧 이단시 당한다.  맛이 비슷한 일본 쌀과 미국 수입 쌀과의 가격차는 열 배도 넘는다.  쇠 고기 값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외국인을 차별 하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세상은 서서히 변해간다.  일본 사람들도 점점 달갑지 않는 버릇을 고쳐가는 중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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