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까모도상

2012.03.22 22:33

mumunsaadmin 조회 수:17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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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204
제목 : 오까모도상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7년 08월 12일    조회수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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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올림픽이 열리기 몇 년 전, 아마 한국에 군사 혁명이 난 다음해가 아닌가 싶다.  나는 우연한 연유로 국제 원자력 장학생으로 일본에 연수를 간적이 있다. 사실인 즉 집 사람이 신문에 난 원자력 장학생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그 신문을 오려 와서 나보고 응시를 해 보라 했다. 그 때 나는 현역 공군 장교였고 비록 공과대학을 졸업은 했지만 원자력과는 전혀 무관한 처지였다. 아마도 집 사람은 자기 남편을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응시하기로 마음먹고, 원서를 작성해서 집사람에게 접수를 부탁했다.  나는 원자력분야에는 문외한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해야겠기에  시립도서관에 가서 원자력에 관련된 책을 하나 빌리고, 처남이 쓰는 물리학 책 중에서 원자력에 관한 부분을 빌려다 공부를 했다.  며칠밖에 시일이 남지 않아서 별로 이거 저것 볼 시간이 없었다.
대강 훑어보고 시험장에 갔는데 웬일 인지 시험 문제가 내가 공부한 연습 문제에서 전부 나왔다. 이쯤 되면 원자력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될 수밖에 없었다. 수험생 중에는 대학교수나 원자력 연구소 연구원등도 있었다.  여기에 끼지 말아야  할 사람이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으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나는 군대에서 재대 하고 싶어 발버둥을 쳤으나 제대를 시켜 주지 않았다.  다른 입대 동기생들은 벌써 많이 제대한 뒤였으나 나는 붙들려서 동기생들 보다는 두 배나 길게 복무를 했다.  그러나 국제 원자력 장학생으로 뽑혔으니 군대에서도 붙잡아 둘 핑계가 없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군에서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사람이 원하는 데로 일본 원자력 연구소에 연수를 가게 되었다.  아마  대한민국 수립 후  일본의 공식 연수생이 아니었나 싶다.  이승만 정권 때는 공식 왕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까모도상은 이 연구소에서 나의 지도 연구원으로 임명되었던 사람이다.  별로 잘 생긴 사람은 아니라도 동경대학 출신이고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 과장이었다.  나는 연구 주제를 원자로의 열역학으로 정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모두가 생소할 뿐이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주 제목에 관한 공부를 하고, 다음으로 다른 연구원들이 어떠한 연구들을 했는지 조사를 할 생각이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 했다.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줄 알면서도 하루는 오까모도상이 나를 불러 “어째서  도서관에만 있느냐”고 야단을 쳤다.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연구제목과 그 결과를 내어 놓으라 했다.  아연 질색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아직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을 알면서 하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자기가 나에게 아무것도 문제 부여를 한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그는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나에게 설교 했다. "연구자는 남이 웃을지 모르지만 자기의 독창적인 생각과 방법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문헌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니 도서관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 이다. 스스로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거듭해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만들어 놓아라. 그리고 자기 것이 된 다음에 비교하기 위해서만 다른 연구자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책이나 자료를 먼저 찾다 보면 그곳에는 거의 없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남의 일을 흉내 내거나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오늘날의 일본은 거의 모든 연구원들이 세계 각 선진국의 연구 결과를 흉내 내는데 바쁘다.  일본의 독창적인 것이 없다. 그것이 오늘날 일본의 큰 문제점이다."  이렇게 일장 훈계를 했다.  나는 일본 사람도 아닌데 일본이 잘못 되어 가는데 대한 분풀이 까지 나에게 퍼부은 셈이다. 하기야 그 시절에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일본상품’하면 가장 저질 상품의 대명사로 알려지던 시절이었다.

처음에 야단을  맞을 때는 그가 괘씸하기도 했고 모욕을 느꼈는데 훗날 이 사건은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도 책이나 남에게 먼저 묻지 아니하고 우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버릇을 길렀다. 나중에 문헌이나 다른 책을 보면 내가 생각한 방법이 참신하고 나쁘지 아니한 것을 발견한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나의 독창성을 믿기보다는 누구의 것을 모방 했느냐고 추궁할 때가 있다.  그만큼 나의 연구 결과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 넘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추궁이 결코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많은 과거 업적들이 이렇게 해서 만들어 낸 것이 많다. 때로는 내가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 생소해서 초기에는 환영을 못 받으나 여러 해가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빛을 발하는 것을 본다.

과거와 비교해 현재의 일본을 보면 일본에는 그와 같이 훌륭한  선생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의 상품은 전 세계적으로 고급 품질의 대명사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까모도상은 나에게는 좋은 선생 이었다.  비록 그때는 기분 나쁘고 불쾌했지만  그이 같이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도 드물다.  몇 몇 좋은 인연으로 내게 크게 또는 작게나마 영향을 준 과거의 고마운 분들을 잊지 못한다.  이것도 인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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