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비서로 둘 수 있다면

2012.03.22 22:32

mumunsaadmin 조회 수:17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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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99
제목 : 부처님을 비서로 둘 수 있다면
이름 : 각산()
등록일 : 2007년 03월 28일    조회수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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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탱화가 있다.  그 탱화에는 부처님이 많은 보살들이나 천신들을 거느리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나름 데로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이 아닌 단 한 분 부처님만을 내 비서로 삼고 싶다.  부처님이 나를 위해 생각하시고 일 하시도록 하는 것 이다.
 
우리 부부는 며칠 전 아들 집을 다녀왔다.  그런데 한 이틀은 속이 뒤틀려 견디기 힘들었다.   일주일 간 지낼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비행기 예약을 변경해서라도 돌아오고 싶을 정도였었다.  그 심정은 집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에 대한  대접은 말 할 것도 없고 하나하나  하는 일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나 며느리는 자기네들 나름대로 다 잘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무엇이 나쁘다고 지적 해 주어도 아마 그 애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아들아이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부부는 여러 가지 걱정이 되어 그 결혼을 반대 했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다던가.  하물며 아들이 일생을 같이할 동반자를 맞는 것이니 본인의 의사가 우선인 것을.  아들애는 우리말을 듣지 않고 결혼을 했다.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우리의 생각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일 뿐.  아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해 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잘 살고 있다.  우리의 욕심은 반도 차지 않는데 말이다.  이게 바로 세대차이 인가보다.   어찌되었건 서로 사랑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보기 싫은 일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그때 문득 내 머리를 치듯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어쩌랴 ?
매일같이 금강경을 독송 한지 햇수로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내 생활은 별로 달라 진 것이 없으니...   금강경 속에는 별의 별 정신과 마음을 닦는 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이번일로 문득 생각 난 것은 ‘부처님을 나의 비서로 생각 해야겠다’는 것이다.  부처님께 오감(안, 이, 비, 설, 신)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케 하고 그 처리된 정보에 따라  반응 혹은 행동 하도록 내게 일러 준다면 삶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금강경에는 보시(布施)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그것은 남에게 무었을 주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해야 할 행동 전체를 말 하는 것 같다.  다시 말 하면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궁극적으로 나 아닌 남을 위해서 하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니 나는 남을 위해서만 행동 하라는 것이 보시의 참 뜻인 것 같다.  세상의 일은 내 비서인 부처님이 알아서 정리 해줄 것이고 나는 그저 보시만 하면 된다는 것이 내가 매일 독송 하는 금강경의 참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이 있어도 보지 말고, 귀가 있어도 듣지 말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말고, 피부가 있어도 감각을 느끼지 말고, 이런 것은 다 비서인 부처님께 맡겨 버리고 나는 그저 보시만 하고 살면 되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주변에는 그다지 잘나지도 못하고 능력도 신통치 않은 것 같은데 대단히 잘 사는 사람을 본다.  아마 그들은 보시를 많이 했거나 아니면 여러  대에 거처 조상들이 보시를 많이 한 자손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위해서 보시를 하지 아니했으면 내가 잘나고 유능 하다 해도 잘 되기는 힘들다고 본다 .  내가 보시를 하면 남이 나를 위해서 누구 인가는 알 수 없으나 보시를 하게 되어 있는 듯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들집에서의 생활이 조금 마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예정대로 며칠을 더 아들 집에서 아무 내색 하지 않고  지내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 해지고 아들이나 며느리 에게 우리가 잘 못 해주고  돌아온 것마저 미안 할 뿐 이었다.   내가 보고 생각했던 것은 깨끗이 지워 버리고 비서가 전해 주는 것 만  마음에 담았더니 나의 모자람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우리는 며느리가 보낸  E-메일을 받게 되었는데  내용인 즉, 시 부모님들이  잘 지내다 가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즐거웠다는 내용과 손주놈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빨리 떠나버려서 섭섭해  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부부는 메일을 보내준 며늘애의 마음 씀에 흐믓해 했다.
그래서 이제 부터는 더 많은 것을 비서에게 맡기고 살도록 노력 하려고 한다.  그것이 매일 독송하는 금강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탱화에 그려진 부처님이 거느리신 여러 보살이나 천신이 부처님을 위한 비서들이라 생각되듯 말이다. 천수 천안의 부처님도 그러실 진데  하물며 내가 어찌 비서가 필요치 않겠는가 ?


12/3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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